第4話 이야기의 시작, 그 설명에 대해 - 04

“야.”

“왜?”

“실기시험이 있다는 말은 왜 안 했어?”


단풍이 떨어져 마지막 잎새가 몇 안 되는 시기를 맞이하고, 동생 녀석이 실기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오늘,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내 말을 들은 동생은 침묵하다, 못마땅하다는 듯이 입을 샐쭉거렸다.


“몰라.”


순간 아차 싶었다. 문을 열며 ‘다녀왔습니다.’라고 나지막이 말하는 녀석에게, 거실 소파에 앉아서 추궁하듯이 물어보면 누구나 기분이 별로일 거다. 나는 헛기침을 몇 번인가 하고, 민망한 눈알을 굴리며 다르게 질문했다.


“그게 아니고, 그냥, 실기시험이 있었는데, 그것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않았나 싶어서.”

“그냥.”

“그래, 그럼, 뭐.”


혁이가 집에 돌아온 건 한 달하고도 보름만이다. 태연 누나가 자료를 가져다준 날을 생각하면 한 달이 지났다. 나름 오랜만에 본 녀석이 집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걱정을 하며 나는 재빠르게 화제를 살짝 비틀었다.


“그래서, 뭐 잡았는데?”

“몰라, 뭐, 곰 같은 거.”

“혼자서 잡은 거야?”

“팀을 이뤄서, 파티라는 걸 짜서 잡았는데, 거의 혼자 잡았다고 봐야지.”

“오올~”


나름 대단하다는 의미의 내 감탄사가 언짢았는지, 혁이는 나를 째려봤다.


“아니, 대단하다고, 뭘 째려봐?”


‘흥.’이라며 콧방귀를 뀌고는 방에 들어가려는 녀석. 나는 그런 녀석을 다시 불러세웠다.


“야, 여기 좀 앉아봐.”


이런 나의 말에 혁이 녀석은 한숨을 내쉬며 터벅터벅 소파 근처의 마룻바닥에 앉았다. 그것도 멀찍이,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그, 안 다쳤고?”


혁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나는 재차 질문했다.


“근데 거의 혼자 잡았다면서, 다른 녀석들은 뭐 했냐?”

“그냥 옆에서 보조해줬지.”

“파티는 몇 명이었어?”

“나 포함해서 5명.”

“으음~”

“거의 2명만 보조해줬어. 나머지 2명은 벌벌 떠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걔들 이제 15, 16살 아니야? 그게 정상이지.”

“여긴 우리가 살던 세계랑 다르잖아.”

“근데 넌 안 무서웠냐?”

“별로.”

“그래? 근데, 어떻게 잡았어? 막 마법으로? 아니면 초식으로? 역시 초식은 아니겠지?”

“검으로 잡았어?”

“검…으로?”

“응. 학교에서 배운 대로 검에 기를 불어넣고, 다시 마법 식을 구축해서 검에 덧씌우고, 초식에 마법을 사용해서 잡았어.”

“와씨, 개쩌는데?”

“나머지 두 명이 움직임을 묶어줘서 쉽게 잡을 수 있었어.”

“오오~ 그럼, 학교에서 많이 배웠네?”

“……선생님들이 도서관에 있는 이런저런 책을 빌릴 수 있게 도와줬거든. 그것들을 보고 많이 배웠지.”

“그럼 선생님들은? 어째 선생님들이 가르쳐준 건 별로 쓸모없었다는 것 같다?”

“별로.”


‘우와~’

내가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매진할 때, 혁이는 벌써 실전을 겪었다. 뭔가 부럽다.


“근데, 진짜 안 무서웠어? 막 떨리거나 그러지는 않았냐?”

“딱히. 그냥 녀석을 보자마자 다른 두 명이 울고불고 난리 치길래, 좀 짜증 났었어.”


나는 그 말에 웃어 재꼈다.


“걔들은 왜 그랬대?”

“몰라. 마법하고 초식이 안 먹혀서 그랬던 것 같아.”


나는 웃으면서 답했다.


“뭔가 상황이 그려진다. 걔들 평소에 잘난 척 심하지 않냐?”

“어.”

“와. 그런 애들이 진짜 있네? 만화에서도 항상 그러잖아? 야~ 만화가들이 참 대단하다. 이걸 이렇게 맞춰버리네.”

“그냥 그렇지, 뭐. 그래도 애들 풀 죽어서 불쌍하더라.”

“내버려 둬~ 다 그렇게 크는 거지. 근데, 진짜 안 무서웠냐? 난 쫄 것 같은데?”

“그냥 그랬어. 보자마자, ‘저걸 쓰러뜨리면 되나?’싶었지. 그러고 나서는 뭐, 애들한테 지시 내리고, 그리고 베어버렸지. 형은 군대도 갔다 왔으니까, 안 무서울걸?”


나는 어이가 없어서 눈을 휘 번득거리며 반박했다.


“군대에서는 곰 같은 거 사냥 안 해. 무슨 러시아야?”

“왜, 군대 썰 같은 글 보면, 막 멧돼지에 이상한 동물들 많잖아.”

“그건 최전방이고.”

“GDP?”


라고, 혁이도 확신이 없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나는 그걸 듣고 미친 듯이 웃었다.


“GOP, GOP! GDP같은 소리하고 있네.”


혁이는 재빠르게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GDP가 뭔데!?”

“국. 내. 총. 생. 산. 이요~”


나는 대답을 하고선 다시 웃었다.


“하, 덕분에 잘~웃었다.”

“흥.”


목소리를 들어보니 토라졌나 보다. 나는 간신히 씰룩이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닦았다.


“그래, 그래. 그래서, 곰 이름은 뭔데?”


혁이는 내 질문에 잠시 조용해지더니, 고개를 나에게서 돌리며 답했다.


“그렉.”


나지막한 동생의 대답에, 나는 한편으로는 방금 일어난 일을 되새기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단어를 입에 몇 번씩 담아보았다.


“그렉, 그렉, 그렉……. …….”


그러다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의심했다.


“그렉?”

“어.”


동생의 태연한 반응에, 나는 혹시 싶어서 다시 한번 더 물어보았다.


“그렉 이라고? 지금 그렉 이라고 했냐?”

“어.”


녀석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시발. 지금 기숙학교에서, 애들 실기시험으로, 그렉을 잡으라고 했다고?”


내 반응에 동생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로 침묵했다.


“야, 그게 사실이야?”

“…….”

“아니!!!”


나는 큰 목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시발!!! 5대 마왕의 사역마를 잡으라고 했다는 게 말이 되냐고!!!”


화가 났다. 아마 얼굴이 빨개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녀석이 그렉을 잡았다는 건, 전선에 갔다 왔다는 거다.


“형!”


내가 큰 목소리로 계속 화를 내자, 녀석이 내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나를 쳐다보았다.


“형, 진정해.”

“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는 최대한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래. 널 나무라는 게 아니야. 근데 시발 이게 말이 되냐고!!!”


당연한 얘기지만,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

“야, 송혁, 포탈 열어.”


나는 손짓을 하며 동생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녀석은 가만히 나를 쳐다만 볼 뿐이었다.


“이거 학원장이 한 일 아니지?”


그렇다. 고작 학원장 따위가 이런 일을 벌였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명백하다.


“당장 왕이 있는 곳으로 포탈 열어!!!”

“형! 그만해!”

“이 나라의 망할 왕이!!! 연합이 분명히 약속했잖아!!! 기숙학교에서 넌 그냥 자기 몸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거고, 널 그 좆같은 전선에는 안 보내기로!!! 구원자로서, 장기 말로서 안 쓰기로!!!”

“하…….”


동생은 피곤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 태도에, 이런 심각한 상황에 나온 저 한숨에, 나는 더욱 화가 났다. 하지만, 녀석이 무어라 말을 하려 해서, 애써 침착한 척이라도 하며 들어보기로 했다.


“형, 나도 20살이야. 여기 있는 애들하고 비교하면 훨씬 전에 성인이 되었다는….”

“개소리하지마!!! 그건 여기 기준이야. 우리 세계 기준이 아니라고!”

“형!”

“닥치고 포탈 열어!!!”


내 외침에 녀석은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너…!!!”

“형! 나도 어른이야! 이제 애가 아니라고! 그 정도는 내가 판단할 수 있어! 녀석을 잡을 수 있으니까 잡은 거야!”

“뭐…? 하!”

“왕이 명령을 하달했고, 학원장은 그걸 막으려 했어.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승낙해서 간 거야.”

“그게 무슨…!”

“형! 제발……”


열불이 터졌다. 부모님께서 들으시면 당장에 연합이고 나발이고 다 날려버릴 거다. 지금 내가 딱 그 심정이다. 솔직히 부모님께서 전선에 계시는 것만 해도 아니꼽다. 그리고 부모님도 딱히 이런 일을 반기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억지로 가셨다. 억지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하, 시발.”


욕을 하면서 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비밀로 해둔 일을 지껄였다.


“너, 전에 엄마랑 아빠가 5대 마왕 중에 2명을 토벌하러 갔던 거 기억하지?”


동생은 침묵을 지켰다.


“한 분당 각각 한 놈씩 맡아서 저세상에 보냈지. 근데, 그거 알아? 그러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생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엄마는 팔 잘리고! 다리 잘리고!! 아빠도 거의 반병신 될 뻔했다고!!!”

“…….”

“그런데, 고작…, 우리 걱정 안 시키려고, 엄마가 재생마법으로 치료해서 온 거였데.”

“알아.”

“그래, 알……. 뭐?”

“나도 알아. 아저씨가 설명해줬으니까.”

“하? 하! 하하!! 하하하하하!!! 하……. 이 시발 새끼들.”


분명 나한테만 얘기해줬다고 했다. 동생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라고. 박승혁 이 시발 새끼가. 모든 게 어이없었다. 너무나도 화가 났다. 치가 떨리는, 턱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그래서, 나지막이 말했다.


“아는 놈이 그래?”

“!”

“부모님께서 왜 그런 꼴이 되면서까지, 그러는 걸 아는 놈이 거길 가?!”

“그럼 어쩌라고!!!”


동생이 화를 냈다. 동시에 그것을 토해냈다.


“손만 빨면서 지켜보자고? 힘이 있는데?! 언제 이 세계를 구원할 건데?! 5대 마왕?! 시발 그 뒤에 4대 천왕에, 마황에, 마신이 있는데!!! 언제 평화를 찾을 건데!!!”

“그건 시발 여기에 사는 망할 놈의 새끼들이 알아서 할 문제고!!! 우리는….”

“그 말, 로타 누나한테도 할 수 있어?”

“!?”


혁이의 그 한마디에 숨이 막혔다. 알고 있다. 이 문제는 더는 이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원치 않게 이곳으로 소환당했어도, 여기서 살 수밖에 없으니, 이유가 있으니, 여러 이유가 생겨버렸으니, 그들의 말처럼 유일한 구원인 우리가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구원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빨리 강해져서,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싶었다. 심지어, 부모님께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이 이상 관여하지 않으시고, 그냥 조용히 여생을 보내실 수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내가 더 빨리 강해져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분명 강해지고 있지만, 성장이 더디다. 더욱이 나의 ‘상태’로 덤벼봤자, 붙잡혀서 적들에게 핵무기를 쥐여주는 꼴이 된다. 많은 생각이 지나쳐간다. 그러면서 감정이 모호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눈물이 났다. 나는 울먹이며 동생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

“또, 가족을 잃을 수는 없잖아.”


입술이 제대로 띄어지지 않았다.


“…….”

“또 그런 아픔을 겪을 수는 없잖아…….”


나는 흐느끼며 동생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계속해서 흘렸다. 무릎을 꿇고 빌고 싶을 정도로, 다시는 그런 걸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럴 일 없어.”


녀석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럴 일……없어.”


어느새 녀석의 한쪽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그럴 일 따위는 없으니까, 걱정하지마.”

“…….”


혁이 녀석.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언제 이렇게 듬직해진 걸까? 형인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잘 컸다.


“그래.”


혁이의, 동생의 말대로다. 나는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네 말대로야. 그럴 일 따위는 없어.”

“…응.”

“고마워.”

“……응.”


그리고 순간, 문이 덜컥 열렸다.


“민!”


로타다. 로타의 목소리다. 나와 혁이는 재빨리 떨어졌다. 그리고 최대한 안 보이게끔 눈물을 훔쳤다.


“어? 저기…… 무슨 일 있었어?”

“어? 아니, 그냥, 옛날이야기가 나와서.”

“…….”


살짝 보니, 로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덕분에 벅차올랐던 감정이 어느 정도 날아갔다.


“정말이야. 혁아, 그치?”

“어.”

“정말인 거지?”

“그러엄~”


나는 능청맞게 얼버무리며 로타에게 다가갔다. 혁이의 굳은 다짐을 듣고, 로타의 머뭇거리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전보다 더 굳센 각오가 새겨졌다. 나는, 지금 여기와서 겪은 일상을, 그녀를 지키고 싶다. 내 가족을 지키고 싶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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